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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 24 민병무 기자]

“이번에 국내 초연하는 ‘마리아 스투아르다’에도 참여하게 돼 기뻐요. 두 번째 인생 작품을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두 여왕의 숨 막히는 불꽃대결, 기대해도 좋습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라벨라오페라단이 다음달 공연(11월 22~24일)하는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만난 그는 설레는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이번 오페라 역시 ‘강혜명 커리어’에 빛나는 필모그래피를 추가하겠다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타(엘리자베스 1세)와 그의 5촌인 스코틀랜드 여왕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니제티 ‘여왕 3부작’ 중 두 번째 시리즈다. 생후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왕이 된 마리아는 다섯 살 무렵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서 성장한다. 나중에 프랑스 왕비가 된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지만 복잡한 남자관계 탓에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영국으로 피신한다.

같은 튜더 왕족 혈통이지만 종교적으로 대립되는 입장에 선 마리아와 엘리자베타는 정치적으로도 라이벌이었다. 귀족들도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두 사람을 이용하며 흔들어댔다. 자신을 거둬준 엘리자베타를 배신한 마리아는 결국 반역죄로 성에 갇힌 뒤 참수형의 비극적 생을 마감한다. 유럽 역사상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첫 군주다.

“실제 역사에서 두 여왕은 서로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도니제티는 두 사람이 얼굴을 쏘아보며 한바탕 입씨름까지 벌였다는 드라마틱한 가공의 스토리를 탄생시켰죠. 거기에 더해 로베르토 레이체스터라는 인물까지 끼워 넣어 삼각관계의 흥미진진한 요소를 덧칠했어요. 로베르토의 마음이 마리아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엘리자베타는 마리아에게 강한 비난과 모욕의 말을 던지죠. 하지만 마리아는 결코 ‘꿀릴 사람’이 아닙니다. 마리아도 엘리자베타에 맞서 ‘영국의 왕좌를 더럽힌 비열한 사생아’라는 치욕스러운 말로 되갚죠. 두 여왕의 살기등등한 싸움이 팽팽하게 극을 이끕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마리아와 엘리자베타의 피 튀기는 이중창이다. ‘새상에서 격리되고, 왕좌에서 물러나(Morta al mondo, e morta al trondo)’로 시작해 ‘볼레나의 더럽혀진 딸(Figlia impura di Bolena)’로 마무리되는 목청 배틀은 심장이 쫄깃하다.

강혜명은 “실제 세계 초연이 있던 날 일이 터졌다. 엘리자베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가 너무 역할에 몰두해 마리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손바닥을 날렸다. 기습공격 당한 마리아는 무대 위에서 거품을 물고 그대로 쓰러졌다”고 비하인드를 털어놨다. 두 가수의 신경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전설의 사고다.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후 강혜명은 고민이 많았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라는 인물을 어떤 캐릭터로 표현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왕 3부작’ 중 첫 번째 시리즈인 ‘안나 볼레나’를 지난 2015년 국내 초연했을 땐 걱정이 없었다. 앤 볼린과 헨리 8세의 스캔들은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여러 개 있었고, 또한 콘서트에서 오페라 속 아리아도 많이 불려져 인물 설정이 쉬웠다. 하지만 이번엔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참 어려워요. ‘힌트’를 얻거나 ‘컨닝’을 했으면 좋겠는데,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더욱이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센 캐릭터’에요. 기본적으로 강인한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되, 너무 옛날 스타일 냄새가 나면 안 될 것 같아 연구 좀 하고 있어요. 레퍼토리도 발성적으로 많이 달라요. 힘든 일이지만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에 즐겁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무대에 첫 선을 보이는 만큼, 제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서 다른 분께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기분 좋은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강혜명은 이번 작품이 자신의 음악 인생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1년의 절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유럽 등 외국에서 활동하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에너자이저다. 유럽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다. 그때마다 ‘안나 볼레나’라고 말하면 ‘정말 네가 그걸 했다고?’라며 깜짝 놀란단다.

“외국에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작입니다. 라벨라오페라단이 제게 승부를 걸어준 게 고마웠어요. ‘안나 볼레나’는 당시 아시아 초연이었는데 선뜻 초이스 해 주었어요. 거기에다 도전의식, 그걸 심어줬어요. 깨질 때 깨지더라고 일단 몸으로 부딪히는 용기를 기르쳐 줬습니다. ‘안나 볼레나’를 마친 것은 그냥 작품 하나 끝낸 게 아니라 그 뒤 더 많은 가치를 두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이번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통해 다시 한번 더 퀀텀점프할 겁니다. 족집게 예언 한번 해볼까요. 이강호 라벨라오페라단 단장의 머릿 속엔 이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의 플랜이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이번 공연 못보시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겁니다. 강추합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한편 이번 라벨라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극적인 드라마성을 강조한 탁월한 해석을 선보인다. 또 16세기의 화려하고 웅장한 영국과 스코틀랜드 왕실 배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유럽 왕족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할 시각적 화려함과 역동적 무대는 오페라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 양진모가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멋진 음악을 선사하며, 이회수가 감각적인 연출을 뽐낸다. 또한 소프라노 강혜명·이다미가 마리아 스투아르다 역을, 소프라노 고현아·오희진이 엘리자베타 역을 맡는다. 테너 신상근·이재식은 로베르토 레이체스터로 변신한다.

이밖에 소프라노 홍선진, 메조소프라노 여정윤, 바리톤 임희성·최병혁, 베이스바리톤 양석진, 베이스 이준석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최정상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메트오페라합창단도 함께 해 더 풍성한 공연을 보여준다.

<에필로그1> 대가의 면모 보여준 르네 플레밍과의 추억

‘인생의 롤 모델이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강혜명은 지난 2007년의 기분 좋은 추억을 털어 놓았다. 당시 그는 비엔나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열린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 주역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대역으로 출연했다. 오페라 루키 단계였기 때문에 열흘 전에 미리 도착했다. 영락없이 군기 바짝 든 신인이었다.

플레밍은 미국을 상징하는 목소리다. 그의 대역이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비약하자면 오스트리아 오페라계가 강혜명을 플레밍과 동급으로 봤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더욱이 그 공연은 세계적 지휘자 미셀 플라송이 지휘봉을 잡은 무대였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하지만 대역은 말 그대로 ‘5분 대기조’다. 주인공이 갑자기 빠지게 되면 그 자리를 채우는 커버(cover) 역할이다. 주역 입장에서는 나를 대신해 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잠재적 라이벌인 셈이니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르네 플레밍을 달랐다.

“공연 당일에 열린 제너럴 리허설 때 한참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저 멀리서 광채가 나더라고요. 난생 처음 누군가의 머리 뒤에 후광이 생기는 현상을 본거죠. 르네 플레밍이었어요. 가만히 자리에 앉더니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더고요. 인터미션 때 내려가서 인사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한 스태프가 소개를 시켜주겠다며 제 손을 이끌었어요. 플레밍이 저한테 ‘중국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더니 ‘방금 상하이에서 카르멘 공연을 마치고 와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봤다’라고 설명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도 한국 친구가 많다라며 혹시 ‘영옥 신(신영옥)’과 ‘미혜 박(박미혜)’을 아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분들을 잘 아는데 아마 그분들은 절 모르실거다’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플레밍이 환하게 웃으면서 ‘당신이 있어서 내가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고맙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사실 대역한테 주역이 그런 말 안하거든요. 쇼킹했어요. ‘역시 세계적인 대가는 뭔가 다르구나’ 망치로 쿵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배운 게 ‘벼는 익을수록 정말 고개를 숙이는구나’였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인격이 있는 성악가가 되어야겠다, 실력의 유무보다 따듯함이 느껴지는 성악가가 되어야겠다 등의 덕목을 마음에 심었다고 고백했다. 그 후로 어디를 가든 꼭 지키는 약속이 있다. 주위를 깨끗이 치우고 나온다, 가장 먼저 수위 아저씨께 인사하고 친해진다. 그걸 한번도 깨트린 적이 없다.

<에필로그2> 연출자 강혜명으로 데뷔...지난해엔 대본까지 쓴 멀티 플레이어

강혜명은 최근 오페라 연출자로 데뷔해 화제가 됐다. 지난달 제주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카르멘’에 당당히 ‘연출자 강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어디 이뿐인가. 작년엔 여순사건 70주년 창작오페라 ‘1948년 침묵’의 대본을 직접 썼다. 이쯤되면 멀티 플레이어다. ‘입봉’을 축하한다고 덕담을 건네자 손사래를 친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카페라부에노에서 댜음달 공연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제가 프랑스에서 ‘카르멘’으로 데뷔했어요. 프랑스에서만 어림잡아 20번 정도 공연한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걸 꼭 연출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찬스가 생겨 덥석 물었어요. 한가지 일(성악)을 오래 하다보면 내 생각을 전체 작품(오페라)에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잖아요. 하정우 같은 영화배우들이 메가폰을 잡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거예요.”

그러면서 본업은 '확실히 소프라노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연출을 하고 대본을 쓰는 것도 여전히 노래를 잘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혜명의 고향 사랑은 각별하다. ‘제주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이번 ‘카르멘’ 공연도 제주출신 성악가들의 전국구 진출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도 있다. 주인공 두 사람(카르멘과 돈호세)만 빼고는 전부 제주 성악가로 세웠다. 짭짤한 소득도 있었다. 내년 5월 중국 상하이음악원에서 제주가 제작한 이번 ‘카르멘’을 무대에 올린다. 강혜명이 연출과 미카엘라 역을 맡는다. K클래식 수출에도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민병무기자 min66@inews24.com

"독일 가장 작은 극장부터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전속 솔리스트까지...최고 전성기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

사진=본인제공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오는 11월 초연되는 ‘마리아 스투아르다’ 공연에서 ‘엘리사베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고현아는 지난 19년 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다. 쾰른 국립음대 졸업 후 독일 작은 극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2013년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유럽 정상의 극장인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전속 솔리스트를 맡았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이것이 고현아'라고 말하는 그는 “국내 오페라계에 ‘신인’으로 돌아왔다”며 “치열하게 공부한 만큼 즐겁게 노래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소프라노 고현아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올라 쾰른 국립 음대(konzert examen)를 졸업했다. 2011년 유럽의 권위있는 음악전문지 오펀벨트(Opernwelt, Opera World) 선정 신인 예술가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2012년 고틀로프 프리크(Gottlob frick) 오페라 메달을 수상했다.

2013년에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로 발탁되어 2017년까지 <나비부인>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교활한 여우><예누파><발퀴레><피터 그라임스> 등의 작품을 공연했다.

2006년 독일 아이제나흐 극장 전속 솔리스트를 시작으로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퍼, 빈 폴크스 오퍼, 독일 슈베린 국립극장, 독일 뮌스터 극장, 한국 국립 오페라단, 광주 시립 오페라단 등 유수의 극장에서 <카티야 카바노바><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나비부인><교활한 여우><라보헴><안드레아 쉐니에><외투><발퀴레><아이다><라보헴><장미의 기사><박쥐><파우스트> 작품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특히 2014년 3월 안젤라 게오르규를 대신해 프란체스코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를 공연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여 빈슈타츠오퍼의 새로운 디바로 급부상했다. 이후 세계적인 거장 오토 쉥크에게 발탁되어 빈슈타츠오퍼 초연 <교활한 여우>에 주역으로도 열연했다.

<여성소비자신문>이 그를 만나 ‘소프라노 고현아’ 그리고 ‘마리아 스투아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력과 프로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000년 10월 말 독일로 떠났다. 쾰른 국립음대를 최고 과정까지 마치고 일을 시작했다. 독일 극장에서 활동한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 극장에서 전속솔리스트로 4년을 지내다가 마지막 2년은 객원으로 지내고 올해 2월 말 귀국했다. 외국생활이 길었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작은 극장에 취직해서 시작해 가장 작은 곳부터 가장 높은 곳 까지 경험해봤다.

저는 신앙인인데, 항상 열심히 하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이끌려서 세계 최고 정상에 있는 극장까지 갔다.

음악의 길은 쉽지 않다. 작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오디션을 보면 2분에서 5분 사이에 인생이 판가름 나는데, 그 몇 분을 위해 있는 힘껏 준비해서 직장과 작품을 따내는 일들이 어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제 커리어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 않나. 외국도 마찬가지라 모든 것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간다. 30년 전 쯤에는 저와 같은 커리어가 정상이었다고 하더라. 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극장에 취직해서 천천히 큰 곳으로 가는 게 그 시절에는 당연했는데, 이제는 이런 층계를 밟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금은 어린 나이에 콩쿨에 나가 상을 타고 큰 극장으로 직행하거나, 일반 회사로 따지자면 수습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정사원이 되는 케이스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그 압박감이 얼마나 크겠나. 그 중에 한국 분들도 많이들 잘해내고 계시는 것은 굉장한 정신력 실력 덕분일 것이다. 저는 제게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해서 감사한다.

항상 생각했던 것이 제 목소리 최고의 전성기일 때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어렵게 결정을 하고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한국에서는 신인으로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다음달 국내 초연을 앞둔 ‘마리아 스투아르다’에서 엘리사베타 역을 맡으셨는데, 이는 어떤 인물인가. 엘리사베타를 표현할 때 어디에 주력하실 계획이신지 관람을 위한 감상포인트를 알려주신다면.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역사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스튜어트) 여왕과 잉글랜드의 엘리사베타(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대한 이야기다. 마리아 스투아르다 여왕이 정치적인 문제로 폐위 된 후에 그녀의 사촌 엘리사베타 여왕이 잉글랜드로 올 것을 제안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엘리사베타 여왕이 마리아 스투아르다에게 자리를 주지만 한 나라에 왕이 두 명이 되다보니 정치적인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결국 엘리사베타에 의해 반역죄의 죄목으로 투옥되고 엘리사베타는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처형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역사적인 배경인데, 독일 극작가 쉴러가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사랑이야기를 더했다. 본래 역사적으로 엘리사베타의 파트너였던 레스터 백작 로베르토가 마리아 스투아르다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삼각관계를 만들며 재미를 가미한다.

저는 역사적으로 쓰인 것처럼 리더십 강한, 국정을 생각하고 여왕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역할에 집중하려 한다. 삼각관계에 대한 분노 등 감정적인 면으로 너무 치우치지는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러한 요소도 있지만 ‘대쪽 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 있다.

이 작품의 타이틀롤인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혼자서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데 제 역할은 독창은 짧고 다른 인물들과 함께 부르는 앙상블이 많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차갑고 깨끗하게 불러야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푸치니의 낭만주의 오페라는 선율자체가 흐르기 때문에 감정이 갈 수 밖에 없는데, 도니제티 작품은 제게 처음인데다 기술로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 단순한 선율이라 절제된 테크닉이 필요할 것 같다. 저에게도 제대로 된 소리로 깨끗하게 노래하는 도전이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이번에 초연 되는데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그 만큼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이겨내고 계시나.

“저는 감사하게도 이전 비엔나 슈타츠오페라에서 초연을 두 작품 했었다. 교활한 여우,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초연을 맡았는데, 오히려 초연에 대한 부담이 없다. 라트라비아타 또는 리골레토 같은 작품들은 굉장히 많이 공연되지 않나.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음반도 많고 이렇게 불러야 한다, 이렇게 들리고 저렇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많다.

그러나 초연은 제 해석으로 제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고현아, 이렇게 생각하면 즐거운 부담이다.”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또 ‘소프라노 고현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 있다면.

“저는 체코 작곡가 야나첵의 카티야 카바노바, 교활한 여우와 이탈리아 작곡가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교활한 여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지금 80대가 되신 세계적인 연출가 오토 쉥크의 마지막 작품에 참여했던 덕분이다. 곧 해외에서 DVD도 출시가 된다. 그분이야 말로 시대를 풍미하는 성악가를 전부 만나보신 분인데, 감사하게 저를 좋아해주시고 자서전 마지막 페이지에 저, 그리고 다른 역할을 맡았던 세분의 배우들과 찍었던 사진을 실어 주셨다. 굉장히 스스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 게 다 주시는 축복 아닌가. 그런 축복을 저에게 주셨다는데 감사할 뿐이다.

제가 맡았던 주인공 여우 역할에 뛰고 구르는 액션이 많았다. 서서 노래만 부르고 들어가는게 아니라 노래하면서 모든 연기를 다 해내야 해서 굉장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라면 찬송가가 아닐까. 저는 부족한데 이렇게 이끌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 밖에 없다. 1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20년을 넘기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돌아오니 한국이 많이 변했다. 외국에서도 이방인, 이곳에서도 이방인으로 살던 제가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뿌리를 내리고 싶어서 들어온 만큼 신인으로써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버티려고 한다. 잘 살아보겠다.”

사진=여성소비자신문

-국내에는 아직 ‘오페라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이 많다. 오페라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

“제가 오페라를 해서 그런지 ‘오페라는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노래 가사가 외국말이라 어렵게 다가오는 것 뿐, 스토리는 대부분 단순하다. 사랑, 정치, 사는 얘기. 드라마와 똑같다. 뭔가를 많이 알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려워 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공연을 보러 가시기 전에 대략적으로 내용을 한 번만 훑고 가시면 된다. 요즘 큰 극장들은 작중 대사와 노랫말을 번역 해서 의자 앞에 달린 모니터에 띄워준다. 독일에서도 이탈리아어로 공연하는 작품들은 그렇게 번역을 제공했었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무대 양 옆에 스크린으로 띄워주는 자막이 있더라.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안하셔도 된다.

저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오케스트라 소리의 울림, 조화가 마음을 정화시키더라. 제가 클래식을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음악에는 감동이 있고 마음을 순화시켜 주는 게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악가가 정말로 자기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좋은 소리도 아닌 작품을 듣기가 힘드실 것이다.

또 이전에는 가격이 진입장벽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엔 뮤지컬 가격이 오페라와 비슷하더라. 그런데도 오페라가 밀린다면 이는 가격이 아니라 오페라는 어렵다, 진입장벽이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 같다. 충분히 오페라로도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점심공연을 보러 갔다 왔는데, 관객 중에 젊은 층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오페라를 보러 오시는데 한국에 오니 젊은 분들이 데이트도 하고, 부모님과 오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많이 변했구나 싶더라.

또 라벨라 오페라단이 이렇게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도 놀랐다. 좋은 가수를 영입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시더라.

제가 한국 데뷔를 2015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했는데,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이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좋은 분들과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다. 좋은 작품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분명히 이번 공연이 첫 오페라 관람이신 분들이 있을 거다. 저희 공연을 보고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해 드리는 게 저희 사명이 아닐까 한다. 그래야 다른 오페라도 또 보러가시게 될 테니까. 제가 우리나라 오페라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서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본인제공